내가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AI에게 처음 질문했던 그날 이후, 나는 캐나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사고가 난 나의 트럭을 운전해서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캐나다로 복귀하는 동료의 트럭을 알아봐 주었고,
나는 그 동료의 일정에 맞춰 그의 트럭에 함께 타게 되었다.
그렇게 사고가 난 지 5일 만에, 나는 겨우 호텔을 나올 수 있었다. 또한 사고가 발생했던 그곳에서 버서 날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나를 태워준 인도인 회사 동료는 나의 사고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제야 사고의 악몽으로 부터 점차 회복되어 가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내 사고와 비교해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만약 그 사고의 주된 원인이 너에게 있다고 경찰이 판단했다면 그날 밤 경찰이 너를 그냥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사고가 그렇게 컸는데도 너를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그 현장에서 경찰이 사고의 주된 원인을 너에게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그 말이 법적으로 맞는 말인지 당시의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라도 믿고 싶었다.
그 사고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니, 사고가 난 뒤 내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경찰이 다시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법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실 그날 밤 경찰은 사고 조사를 하면서 나를 약 한 시간 동안 경찰차 안에 머물게 했다.
다행히 수갑은 채우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경찰차를 타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 알았다.
경찰차 뒷좌석에서는 내가 안에서 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을.
밖에서는 경찰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혼자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나갈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한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사고 현장을 떠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 동료의 트럭을 타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씩 안도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간다.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엄청난 일을 겪은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안아주고 위로해 줄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족을 보면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사고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때부터 사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지만,
사고는 나와 함께 국경을 넘어 우리 집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가족과 통화할 때마다 아내는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아내가 왜 그렇게 우는지 제대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내 자신도 무서웠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일을 할 수 있는지, 우리 가족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지,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할 것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나였다.
큰 사고가 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고 이후 남편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혹시 내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는 것은 아닌지, 혹시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내는 울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 자신도 두려웠지만, 나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가족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나의 고통이었다. 가족은 나를 안아줄 수 있었고, 동료는 나를 위로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앞으로 어떤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줄 수는 없었다. 나는 위로와는 다른 종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버지이고 가장이었지만 가족에게,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조차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가족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게 참 힘들었다.
나는 그동안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힘들면 버티면 됐고, 문제가 생기면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가족을 지켜야 하는데,
정작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더 힘들었다.
몸은 집에 돌아와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사고가 끝나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날의 사고가 떠올랐고, 경찰차 뒷좌석이 떠올랐고,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는다고 생각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해지면 더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질문에는 아무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사고가 가족에게 남긴 흔적을 하나씩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토론토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딸이 있었다.
딸은 자기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성적도 좋았고 목표도 있었다. 이제 과정을 잘 마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
그런데 사고 이후 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랐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냥 아빠 걱정을 많이 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딸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지?
그 불안을 혼자 끌어안은 채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딸의 성적을 확인했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았던 성적이 무너져 있었다.
한 학기의 성적은 거의 F로 떨어져 있었다.

딸이 자기 미래를 위해 몇 년 동안 쌓아왔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내 사고 이후 흔들려버린 것이다.
그 성적을 보는 순간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성적표에 찍힌 F라는 글자를 보면서, 나는 그것이 단순히 딸의 성적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사고가 아이의 삶에 남긴 흔적처럼 느껴졌다. 내 사고 때문에 왜 내 딸의 미래까지 이렇게 되어야 하나.
아버지로서 너무 한 없이 미안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괜찮아.”
그 한마디로 괜찮아질 일이 아니었다.
“다시 하면 돼.”
그렇게 쉽게 말할 수도 없었다.
딸이 몇 년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었다.
무슨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몰라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더 가슴 아팠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에서 사이언스를 공부하면서 치과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들에게도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가족 밖에서 갑자기 너무 큰 충격이 몰려왔다.
아빠에게 큰 사고가 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될 일이 아니었다.
아빠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만 보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집중력은 흔들렸고 준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훨씬 뒤, 치과대학 결과를 기다리는 아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또 다른 무력감을 느꼈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말조차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가능성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마지막 문을 넘지 못했을 때, 나는 아버니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 결과를 모두 사고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생의 결과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버지로서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 들어왔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충격 속에서 아이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나는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사고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고는 도로 위에서 차량이 충돌한 그 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고는 그날 밤 도로에서 시작됐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와 함께 국경을 넘어왔고,
내 잠을 빼앗았고,
아내를 울게 했고,
딸의 학교생활 속으로 들어갔고,
아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 속으로까지 들어갔다.
나는 사고 현장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 그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 절박해졌다.
내가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족이 나를 보고 있는데, 문제는 여전히 하나였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고는 미국에서 발생했고 나는 캐나다에 살고 있었다.
미국의 교통법도 몰랐다. 경찰이 사고를 어떤 절차로 조사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받은 티켓이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도 몰랐다.
법원에 가게 되면 무엇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보험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대방 변호사는 왜 연락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도 몰랐다.
영어도 문제였지만, 사실 영어보다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집으로 법률 문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대방 측 변호사를 통해 연락이 왔고, 약 일주일 간격으로 또 다른 서류가 도착했다. FedEx Priority로 급하게 보내진 것처럼 보이는 서류를 받아 들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다.
봉투를 뜯어 보니 영어로 빼곡한 법률 문장이 나왔다.
읽어도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모르니까 더 두려웠다.
왜 나한테 이것을 보내는 거지?
상대방 변호사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거지?
내가 답해야 하는 건가?
답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혹시 내가 잘못 대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때의 나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족에게는 괜찮다고 말해야 했지만, 정작 나는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나에게 길을 알려줬으면 했다.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정확히 맞혀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은 여기다.”
“다음에는 이런 절차가 있을 수 있다.”
“이 문서는 이런 의미다.”
“그러니 다음에는 이것을 확인해 봐라.”
그 정도라도 말해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래서 다시 AI를 열었다.
호텔에서 처음 AI를 사용했을 때의 질문은 단순했다.
티켓을 보여주며,
“이게 무슨 뜻이지?” 라고 물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질문이 달라졌다. 문장 하나의 번역만으로는 부족했고, 내가 처한 상황 전체를 알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AI에게 문장의 뜻을 묻는 사람이 아니라,
내 상황 전체의 방향을 묻는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AI에게 하나씩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경찰은 현장에서 무엇을 했는지, 나는 어떤 티켓을 받았는지, 사고 이후 어떤 문서를 받았는지,
상대방 변호사는 무엇을 보내왔는지, 그리고 물었다.
“이 모든 것을 같이 놓고 보면 지금 나는 어떤 상황에 있는 거야?”
그때부터 나는 AI를 조금 다르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교통사고 처리 절차를 물었고, 경찰 조사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으며, 티켓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어떤 절차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앞으로 진행될 법원 절차도 물었고, 보험회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무엇보다 상대방 변호사가 내게 보내온 문서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하나의 가능성만 묻지 않았다.
“이렇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돼?”
“반대로 이렇게 판단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경찰이 이런 결론을 내리면 어떤 절차가 이어질 수 있어?”
“법원에서는 어떤 경우들이 있을 수 있어?”
나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하나씩 물어보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물론 AI가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AI가 변호사나 경찰, 판사를 대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제공한 사실을 바탕으로 관련 제도와 일반적인 절차를 설명해주고, 내가 다음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길라잡이가 되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대충 물으면 대충 답변이 돌아왔고, 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 답도 달라졌다.
내가,
“미국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떻게 해야 해?” 라고만 물으면 AI도 일반적인 답을 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지역과 당시 상황, 경찰의 조치, 내가 받은 문서, 날짜와 시간, 상대방이 보낸 편지의 내용까지 하나씩 정확하게 알려주면 답은 달라졌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답도 구체적으로 변했다.
나는 그 원리를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절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내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내 상황에 가까운 답을 받을 수 있구나.”
그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입력했다.
날짜를 넣었다.
문서를 보여줬다.
앞뒤 상황을 설명했다.
이전에 받은 답과 새로운 문서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AI가 답하면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물었다.
“왜?”
“그 근거는 뭐야?”
“다른 가능성은 없어?”
“내 상황에서는 어떤 부분을 더 확인해야 해?”
그때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말도 몰랐다.
AI를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기술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살아남으려고 묻고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밤에도 물었다.
법률 문서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을 때도 물었다.
가족에게는 괜찮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온 뒤에도 다시 AI를 열었다.
모르는 것을 물었으며,
두려운 것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정답보다 방향이 필요했던 것 같다.
깜깜한 길에서 목적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몰라도 좋았다.
적어도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지,
그렇다고, AI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내 가족의 고통을 없애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앞으로 겪게될 일을 대신 막아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져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모르던 그때,
AI는 적어도 내가 다음 질문을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AI를 배우려고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AI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그저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까지 같이 무너질 수는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 질문했을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AI에게 질문하는 법을 넘어, AI와 함께 길을 찾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