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살아가는 현실의 기록

  • 내가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AI에게 처음 질문했던 그날 이후, 나는 캐나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사고가 난 나의 트럭을 운전해서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캐나다로 복귀하는 동료의 트럭을 알아봐 주었고,

    나는 그 동료의 일정에 맞춰 그의 트럭에 함께 타게 되었다.

    그렇게 사고가 난 지 5일 만에, 나는 겨우 호텔을 나올 수 있었다. 또한 사고가 발생했던 그곳에서 버서 날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에서 나를 태워준 인도인 회사 동료는 나의 사고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제야 사고의 악몽으로 부터 점차 회복되어 가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내 사고와 비교해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만약 그 사고의 주된 원인이 너에게 있다고 경찰이 판단했다면 그날 밤 경찰이 너를 그냥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사고가 그렇게 컸는데도 너를 체포하지 않았다는 것은, 적어도 그 현장에서 경찰이 사고의 주된 원인을 너에게 있다고 판단하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그 말이 법적으로 맞는 말인지 당시의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라도 믿고 싶었다.

    그 사고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니, 사고가 난 뒤 내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경찰이 다시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닐까?.

    법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실 그날 밤 경찰은 사고 조사를 하면서 나를 약 한 시간 동안 경찰차 안에 머물게 했다.

    다행히 수갑은 채우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서 경찰차를 타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날 처음 알았다.

    경찰차 뒷좌석에서는 내가 안에서 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을.

    밖에서는 경찰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혼자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나갈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한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사고 현장을 떠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 동료의 트럭을 타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조금씩 안도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 집에 간다.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엄청난 일을 겪은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안아주고 위로해 줄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족을 보면 조금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보니 사고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때부터 사고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지만,

    사고는 나와 함께 국경을 넘어 우리 집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가족과 통화할 때마다 아내는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아내가 왜 그렇게 우는지 제대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내 자신도 무서웠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일을 할 수 있는지, 우리 가족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지,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할 것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나였다.

    큰 사고가 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고 이후 남편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혹시 내가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는 것은 아닌지, 혹시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내는 울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나 자신도 두려웠지만, 나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가족을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나의 고통이었다. 가족은 나를 안아줄 수 있었고, 동료는 나를 위로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앞으로 어떤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줄 수는 없었다. 나는 위로와는 다른 종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버지이고 가장이었지만 가족에게,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조차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가족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게 참 힘들었다.

    나는 그동안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힘들면 버티면 됐고, 문제가 생기면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가족을 지켜야 하는데,

    정작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더 힘들었다.

    몸은 집에 돌아와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사고가 끝나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누워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날의 사고가 떠올랐고, 경찰차 뒷좌석이 떠올랐고,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는다고 생각이 멈추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해지면 더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질문에는 아무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사고가 가족에게 남긴 흔적을 하나씩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토론토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던 딸이 있었다.

    딸은 자기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성적도 좋았고 목표도 있었다. 이제 과정을 잘 마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

    그런데 사고 이후 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몰랐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냥 아빠 걱정을 많이 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딸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지?

    그 불안을 혼자 끌어안은 채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딸의 성적을 확인했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았던 성적이 무너져 있었다.

    한 학기의 성적은 거의 F로 떨어져 있었다.

    딸이 자기 미래를 위해 몇 년 동안 쌓아왔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내 사고 이후 흔들려버린 것이다.

    그 성적을 보는 순간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성적표에 찍힌 F라는 글자를 보면서, 나는 그것이 단순히 딸의 성적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 사고가 아이의 삶에 남긴 흔적처럼 느껴졌다. 내 사고 때문에 왜 내 딸의 미래까지 이렇게 되어야 하나.

    아버지로서 너무 한 없이 미안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괜찮아.”

    그 한마디로 괜찮아질 일이 아니었다.

    “다시 하면 돼.”

    그렇게 쉽게 말할 수도 없었다.

    딸이 몇 년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었다.

    무슨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몰라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 더 가슴 아팠다.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에서 사이언스를 공부하면서 치과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들에게도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가족 밖에서 갑자기 너무 큰 충격이 몰려왔다.

    아빠에게 큰 사고가 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될 일이 아니었다.

    아빠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만 보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집중력은 흔들렸고 준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훨씬 뒤, 치과대학 결과를 기다리는 아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또 다른 무력감을 느꼈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말조차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가능성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마지막 문을 넘지 못했을 때, 나는 아버니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 결과를 모두 사고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생의 결과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버지로서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 들어왔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충격 속에서 아이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나는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때 사고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사고는 도로 위에서 차량이 충돌한 그 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고는 그날 밤 도로에서 시작됐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나와 함께 국경을 넘어왔고,

    내 잠을 빼앗았고,

    아내를 울게 했고,

    딸의 학교생활 속으로 들어갔고,

    아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 속으로까지 들어갔다.

    나는 사고 현장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 그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 절박해졌다.

    내가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족이 나를 보고 있는데, 문제는 여전히 하나였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사고는 미국에서 발생했고 나는 캐나다에 살고 있었다.

    미국의 교통법도 몰랐다. 경찰이 사고를 어떤 절차로 조사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받은 티켓이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도 몰랐다.

    법원에 가게 되면 무엇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보험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대방 변호사는 왜 연락하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도 몰랐다.

    영어도 문제였지만, 사실 영어보다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집으로 법률 문서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대방 측 변호사를 통해 연락이 왔고, 약 일주일 간격으로 또 다른 서류가 도착했다. FedEx Priority로 급하게 보내진 것처럼 보이는 서류를 받아 들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다.

    봉투를 뜯어 보니 영어로 빼곡한 법률 문장이 나왔다.

    읽어도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모르니까 더 두려웠다.

    왜 나한테 이것을 보내는 거지?

    상대방 변호사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거지?

    내가 답해야 하는 건가?

    답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혹시 내가 잘못 대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때의 나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족에게는 괜찮다고 말해야 했지만, 정작 나는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나에게 길을 알려줬으면 했다.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정확히 맞혀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은 여기다.”

    “다음에는 이런 절차가 있을 수 있다.”

    “이 문서는 이런 의미다.”

    “그러니 다음에는 이것을 확인해 봐라.”

    그 정도라도 말해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래서 다시 AI를 열었다.

    호텔에서 처음 AI를 사용했을 때의 질문은 단순했다.

    티켓을 보여주며,

    “이게 무슨 뜻이지?” 라고 물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질문이 달라졌다. 문장 하나의 번역만으로는 부족했고, 내가 처한 상황 전체를 알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AI에게 문장의 뜻을 묻는 사람이 아니라,

    내 상황 전체의 방향을 묻는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AI에게 하나씩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고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경찰은 현장에서 무엇을 했는지, 나는 어떤 티켓을 받았는지, 사고 이후 어떤 문서를 받았는지,

    상대방 변호사는 무엇을 보내왔는지, 그리고 물었다.

    “이 모든 것을 같이 놓고 보면 지금 나는 어떤 상황에 있는 거야?”

    그때부터 나는 AI를 조금 다르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교통사고 처리 절차를 물었고, 경찰 조사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으며, 티켓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어떤 절차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앞으로 진행될 법원 절차도 물었고, 보험회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무엇보다 상대방 변호사가 내게 보내온 문서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하나의 가능성만 묻지 않았다.

    “이렇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돼?”

    “반대로 이렇게 판단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경찰이 이런 결론을 내리면 어떤 절차가 이어질 수 있어?”

    “법원에서는 어떤 경우들이 있을 수 있어?”

    나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하나씩 물어보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물론 AI가 미래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AI가 변호사나 경찰, 판사를 대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제공한 사실을 바탕으로 관련 제도와 일반적인 절차를 설명해주고, 내가 다음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길라잡이가 되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대충 물으면 대충 답변이 돌아왔고, 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 답도 달라졌다.

    내가,

    “미국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떻게 해야 해?” 라고만 물으면 AI도 일반적인 답을 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지역과 당시 상황, 경찰의 조치, 내가 받은 문서, 날짜와 시간, 상대방이 보낸 편지의 내용까지 하나씩 정확하게 알려주면 답은 달라졌다.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답도 구체적으로 변했다.

    나는 그 원리를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절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

    “내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내 상황에 가까운 답을 받을 수 있구나.”

    그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자세히 입력했다.

    날짜를 넣었다.

    문서를 보여줬다.

    앞뒤 상황을 설명했다.

    이전에 받은 답과 새로운 문서를 비교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AI가 답하면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물었다.

    “왜?”

    “그 근거는 뭐야?”

    “다른 가능성은 없어?”

    “내 상황에서는 어떤 부분을 더 확인해야 해?”

    그때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말도 몰랐다.

    AI를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기술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살아남으려고 묻고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밤에도 물었다.

    법률 문서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을 때도 물었다.

    가족에게는 괜찮다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온 뒤에도 다시 AI를 열었다.

    모르는 것을 물었으며,

    두려운 것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정답보다 방향이 필요했던 것 같다.

    깜깜한 길에서 목적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몰라도 좋았다.

    적어도 바로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지,

    그렇다고, AI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내 가족의 고통을 없애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앞으로 겪게될 일을 대신 막아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져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모르던 그때,

    AI는 적어도 내가 다음 질문을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AI를 배우려고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AI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그저 가족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까지 같이 무너질 수는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 질문했을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AI에게 질문하는 법을 넘어, AI와 함께 길을 찾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 사고가 난 직후, 나는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운전하던 차량은 비록 내가 owner-operator였지만 사고후 견인이 되어 있었고,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교통편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 나는 혼자 판단해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회사의 통제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단 사고 근처 호텔을 잡아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약 5일 동안 머물렀었다.

    돌이켜보면 그 5일이 내가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첫 시간이었다.

    사고가 난 직후에는 정신이 없었고, 사고 현장에서는 경찰의 질문에 답해야 했으며, 회사와 연락해야 했고,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제대로 정리할 틈도 없이 계속 다음 절차를 따라가야

    했었다. 그런데 호텔방에 혼자 남게 되자 그제야 사고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앞으로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불안도 조금씩 커져만 갔었다.

    나는 내가 운전하던 큰 상업용 차량과 상대편의 작은 차량이 충돌했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상대 차량 쪽의 인명피해가 더 컸기 때문에, 실제 사고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와는 별개로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고 원인에 대해 애매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상대편의 잘못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큰 차량을 운전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사고의 주된 원인을 제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형사 변호사까지 필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나는 교통법규 위반 티켓을 하나 받았었다.

    호텔방에서 그 티켓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으니 생각이 복잡해졌었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경찰이나 법원이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고를 바라본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사고에는

    인명피해가 있었고, 나는 그 당시 미국의 교통법이나 형사절차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거의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는 티켓을 사진으로 찍어 AI에게 upload해서 물어보기 시작했다.

    질문은 전문적인 법률 질문이라기보다는 아주 현실적인 것이었다. 이 티켓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법원에 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사고에

    인명피해가 있는 상황에서 이 교통법규 위반이 나에게 얼마나 큰 문제가 될 수 있는지등을 물었었다.

    AI의 답변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그전까지 나는 사고의 원인만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잘못이 더 큰데, 내가 왜 형사 변호사까지 필요하지?’ 라고 내 생각은 거의 그 정도였다.

    그런데 AI가 설명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내가 사고에 대해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는 것과 실제 법적 절차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고, 특히 인명피해가 있는

    큰 사고에서 교통법규 위반 티켓까지 받은 상태라면 사건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스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형사사건이나 중대한 교통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를 통해 나를 대변하고 방어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을 보고 나서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 했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과 법적으로 나를 제대로 방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었다.

    게다가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닌 상태에서 미국의 법원 절차를 혼자 이해하고 대응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AI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을 담당할 수 있는 형사법 변호사들을 찾아달라고 했고, 가능하면 그 지역에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고 경험이 많은 사람,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변호사를 찾아달라고 했다.

    그전까지 내가 인터넷 검색을 할 때는 보통 검색창에 몇 개의 단어를 넣고 홈페이지를 하나씩 열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AI를 이용하니 내가 원하는 조건을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 사건의 성격, 교통사건과 형사법 경험, 그리고 한국어 가능 여부까지 조건을 넣어서 후보를 찾아달라고 했고, AI는 그 조건에 맞는 변호사들을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나는 그 정보를 하나씩 확인하면서 직접 연락을 시작했다.

    그리고 추천된 사람들 가운데 한 분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연결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변호사님이 이후 법원 절차에서 나를 대변해주었고, 내가 혼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면서 사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AI가 내 사건을 해결해준 것은 아니었다.

    법정에서 나를 변호한 것은 AI가 아니었고, 최종적인 법률 판단과 그에 대응한 사람은 변호사였다.

    하지만 AI가 없었다면 나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검색했을 것이고, 어떤 종류의 변호사를 찾아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사무실에 무작정 연락했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그 방법도 좋은 변호사를 찾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 직후 호텔방에 혼자 있으면서 영어도 익숙하지 않았고 미국 법률 시스템도 잘 몰랐던 상황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내가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AI의 도움이 컸다.

    당시의 나는 AI를 무슨 대단한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를 물으면 답을 주는, 조금 더 편리한 검색도구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호텔방에서 티켓 사진 하나를 올리고 시작했던 그 질문이 내가 AI를 사용하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한 첫 지점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AI의 답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AI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보여주었고, 실제 전문가에게 연결될 수 있도록 길을 좁혀주었다.

    그게 내가 처음 경험했던 AI의 실제적인 힘이었다.

    나는 질문했고, AI는 상황을 정리해주었고, 나는 그 설명을 통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위험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AI를 이용해서 필요한 전문가를 찾았고, 결국 실제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단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시작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호텔방에서 티켓 하나를 들고 AI에게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던 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AI에게 수십 장의 문서를 읽히고, 서로 다른 날짜의 기록을 연결하고, 상대방의

    답변에서 모순을 찾고, 몇 달 전의 질문과 오늘의 답변을 비교하면서 사건 전체를 다시 구성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AI는 나에게 변호사가 아니었다. 변호사를 찾아가는 길을 처음 보여준 하나의 도구였다.

    그리고 그 작은 경험 때문에 나는 그다음 문제가 생겼을 때도 다시 AI를 찾게 되었다.


    ※ 당시 기록의 공개본에서는 관련 당사자의 개인정보, 구체적인 지역 정보 및 일부 민감한 사고 내용을 보호하기 위해 비식별화·편집했습니다. 원본 기록은 변경하지 않고 별도로 보존하고 있으며, 공개본은 당시 질문과 답변의 핵심 의미를 변경하지 않는 범위에서 편집했습니다.

  • I Didn’t Start Using AI to Learn AI

    처음부터 AI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을 공부해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는 훨씬 현실적이었다.

    내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고, 군 복무 중에는 정보 관련 업무를 수행했었다. 전역 후에는 IT 관련 사업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과 새로운 삶을 위해 캐나다로 이민하면서 내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처음에는 하우스키핑 일을 했다. 이후 건설 현장에서 브릭레이어 헬퍼(Bricklayer Helper)로 여러 해 일했고, 영주권을 받은 뒤에는 Class 1 상업운전 자격으로 트럭을 운전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도로 위에서 일하며 가족의 삶을 만들어왔다. 수입도 높고 가족의 삶의 질 또한,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그러다 2024년 10월, 미국 I-90에서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 사고 이후 내가 상대해야 했던 것은 사고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보험회사, 의료기록, 경찰기록, 법원 문서, 각종 클레임, 법률 용어, 미국 국내법, 캐나다 국내법, 양국의 보험 관련법, 그리고 수많은 이메일등…

    서로 다른 역할과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기관들이 한꺼번에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알지 못했던 제도와 절차가 끊임없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영어였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제도와 낯선 언어 사이에 혼자 남겨진 듯한 순간들이 있었다.

    무엇이 중요한지조차 알기 어려웠고, 어떤 문장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내가 내려야 할 판단도 달라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끊임없이 내 질문을 받아주고, 다시 설명해주고, 내가 보내야 할 글을 정리해주던 도구가 있었다.

    그것이 내 옆에 있었던, 내 생활속에 같이 있었던 AI였다.

    처음에는 영어 때문에 AI를 사용했다

    처음 AI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영어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 이것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험과 법률, 의료와 행정에 관한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상황을 잘못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판단이 달라지면 실제로 내가 취하는 행동과 그 결과까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 문장의 뜻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이해해야 했다.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AI를 사용했다.

    영어로 받은 이메일을 스크린 캡처하거나 복사해서 AI에게 보여주고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야?”

    그리고 내가 한국어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작성한 뒤 다시 물었다.

    “내가 작성한 이 한글 내용을 영어 이메일로 작성해 줘.”

    모르는 보험 용어나 법률 용어가 나오면 또 물었다.

    그게 전부였다.

    당시 나에게 AI는… 특별한 지능도, 분석가도, 전략가도 아니었다.

    번역기와 조금 더 똑똑한 검색 도구에 가까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번역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점점 복잡해졌다.

    한 통의 이메일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제 받은 이메일과 오늘 받은 이메일의 내용이 미묘하게 달랐다.

    몇 달 전 누군가가 했던 설명과 지금의 설명을 비교해야 했다.

    어떤 문서를 언제 제출했는지 기억해야 했고, 의료기록이 만들어진 시점과 보험회사가 어떤 판단을 내린 시점을 연결해서 볼 필요도 생겼다.

    경찰기록과 법원기록을 읽어야 했고, 서로 다른 보험제도와 여러 클레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이해해야 했다.

    문제 하나를 이해하면 그 뒤에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내가 AI에게 던지는 질문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이야?”

    라고 물었다.

    그러다가,

    “지난번 답변과 이번 답변은 무엇이 다른가?”

    라고 묻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나서는,

    “이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근거를 원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가?”

    “날짜순으로 놓고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가?”

    “반대편에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라고 묻기 시작했다.

    내 질문 자체가 변하고 있었다.

    현실의 문제를 풀다가 AI를 배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나는 AI 사용법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AI 강의를 듣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좋은 프롬프트를 만들기 위해 AI를 사용했던 것도 아니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질문하다 보니, 어느 순간 AI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 AI가 하는 역할도 달라졌다.

    Translator → Research Assistant → Analyst → Record Organizer → Verification Tool → Reasoning Partner

    처음에는 문장을 번역했다.

    그다음에는 정보를 찾고 설명하게 했다.

    그다음에는 여러 기록을 비교하게 했다.

    시간순으로 자료를 정리하게 했고, 서로 다른 문서 사이의 연결점을 찾게 했다.

    그리고 점차 AI가 제시하는 답 자체를 다시 검증하는 데에도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우게 되었다.

    AI는 언제나 옳지 않았다

    AI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이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AI는 언제나 옳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상당히 확신에 찬 표현으로 잘못된 답을 내놓기도 했다.

    내 질문 속에 잘못된 전제가 들어 있으면 그 전제를 그대로 따라가며 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내가 듣고 싶은 방향으로 질문하면 그 방향의 논리를 더욱 강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답을 보면서 단순하게 생각했다.

    ‘AI가 틀렸다.’

    그런데 계속 사용하다 보니 조금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왜 AI는 그런 답을 했을까?

    내가 어떤 정보를 주었는가?

    어떤 정보를 주지 않았는가?

    내 질문에는 이미 어떤 전제가 들어 있었는가?

    이전 대화에서 만들어진 맥락이 지금의 답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 상황에서는 그런 방향의 답이 만들어졌는가?

    나는 조금씩 AI가 답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AI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AI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AI와 점점 익숙해졌다.

    답을 얻는 것보다 중요한 것을 배우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AI에게 좋은 답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I가 어떤 답을 주었다면 다시 물어야 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원문은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날짜는 맞는가?

    내가 제공한 자료와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가?

    다른 해석은 가능한가?

    내가 원하는 결론 때문에 AI의 답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나는 또 다른 것을 배워야 했다.

    AI에게 답을 받는 방법이 아니라, AI의 답을 검증하는 방법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AI를 사용하는 방식은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문과 기록으로 돌아가 확인하고, 반대 질문을 던지고, 다시 비교하고, 틀린 부분을 수정하게 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처음 질문 자체를 다시 만들었다.

    AI는 나 대신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더 잘 판단하기 위해 함께 사고하고 검증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기록을 시작한다

    이 사이트는 바로 그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었다.

    나는 여기서 완벽한 AI 사용법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이 프롬프트 하나만 사용하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조금 다르다.

    실제 삶의 복잡한 문제 속에서 한 사람이 AI를 어떻게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어디에서 AI의 도움을 받았고, 어디에서 실패했는지.

    AI가 틀렸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내 질문이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질문을 바꾸었는지.

    수많은 문서와 기록을 어떻게 연결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AI뿐 아니라 나 자신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

    앞으로 이곳에는 내가 실제로 겪었던 여러 순간들이 등장할 것이다.

    처음 영어 이메일 한 통을 번역했던 순간부터, 서로 다른 기록을 비교하고, 긴 시간의 흐름을 재구성하고, AI의 답을 다시 검증하기 시작했던 순간까지.

    성공한 방법만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 질문했던 순간도, AI의 답을 너무 쉽게 믿었던 순간도, 다시 처음부터 검증해야 했던 순간도 기록하려 한다.

    그리고 각각의 실제 경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려고 한다.

    내가 겪은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람도 자신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이 기록을 계속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것이 시작이다

    나는 AI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리고 AI를 배우기 위해 이 길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생의 큰 위기를 맞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AI는 나에게 번역기에 불과 했다.

    그러다 검색 도구가 되었고, 기록을 정리하는 도구가 되었으며, 분석하고 검증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도구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어쩌면 AI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AI에게 질문하는 나의 방식이 변했고, 정보를 바라보는 나의 방식이 변했으며, 문제를 생각하는 나의 방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AI를 배우려고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I를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이 기록의 시작이다.